생산성 도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아마 '에버노트파'와 '노션파'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논쟁을 한 번쯤은 목격했을 겁니다. 혹은 그 논쟁의 중심에서 "대체 나한테 맞는 건 뭐지?"라며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수년간 에버노트의 충성스러운 유료 사용자였고, 노션의 등장 이후 그 무한한 가능성에 매료되어 깊이 파고들었던 탐험가이기도 합니다. 두 도구를 각각 메인으로 사용하며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바탕으로, 오늘 그 지루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드리겠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기능 비교가 아닌, 두 도구의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와 당신의 성향에 맞는 최적의 선택지를 알려주는 최종 가이드가 될 것입니다.
핵심 전제: '디지털 파일 캐비닛' vs '디지털 레고 블록'
두 도구 사이에서의 고민은 사실상 두 가지 다른 철학 사이에서의 고민과 같습니다. 이 비유만 이해하면, 당신에게 맞는 툴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에버노트(Evernote)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디지털 파일 캐비닛'입니다.
이것의 본질은 '저장'과 '검색'에 있습니다. 웹서핑 중 발견한 아티클, 영수증, 회의록,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 등 형태를 가리지 않고 모든 정보를 빠르고 안전하게 '집어넣고', 필요할 때 순식간에 '찾아내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 노션(Notion)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디지털 레고 블록'입니다.
이것의 본질은 '구축'과 '연결'에 있습니다. 데이터베이스, 칸반보드, 캘린더, 위키 등 흩어져 있는 블록들을 조립해 나만의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 개인 위키, 습관 트래커 등 맞춤형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파일 캐비닛에 레고를 보관할 수는 있지만, 레고로 성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레고 블록으로 파일 캐비닛 모양을 만들 수는 있지만, 실제 캐비닛처럼 빠르고 효율적으로 서류를 보관하고 찾기는 어렵습니다. 이 차이가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Round 1. 정보 수집 (Capture) 능력: 에버노트의 압승
정보를 '수집'하는 속도와 편리함에 있어서는 단연코 에버노트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웹서핑 중 정보를 저장하는 '웹 클리퍼' 기능은 노션이 아직 따라오지 못할 만큼 강력하고 빠릅니다. 광고를 제거하고 본문만 깔끔하게 저장하는 능력, PDF나 스크린샷에 하이라이트와 주석을 바로 추가하는 기능은 연구자나 학생, 자료 수집이 많은 직장인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모바일 앱의 구동 속도나 순간적인 메모를 남기는 반응 속도 역시 '일단 저장'이라는 목적에 더 충실한 것은 에버노트입니다.
Round 2. 정보의 조직 및 가공: 무승부 (그러나 성향 차이)
정보를 정리하고 구조화하는 방식에서 두 도구는 명확한 차이를 보입니다.
- 에버노트의 방식 (안정적인 서재): '스택 → 노트북 → 노트'로 이어지는 구조는 현실의 서류철과 유사하여 매우 직관적입니다. 여기에 강력한 '태그' 기능을 활용하면 하나의 노트를 여러 주제에 걸쳐 분류할 수 있어 유연성도 확보됩니다.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구조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적합합니다.
- 노션의 방식 (자유로운 작업대): 페이지 안에 페이지를 무한정 넣고, 데이터베이스와 관계형 링크를 통해 정보를 유기적으로 엮는 방식은 무한한 자유도를 제공합니다. 프로젝트 관리, 독서 목록처럼 '속성'을 가진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압도적인 강점을 보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자유도는 오히려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 길을 잃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Round 3. 창작 및 시스템 구축: 노션의 완벽한 승리
단순한 정보 저장을 넘어, 그 정보들을 재료로 '무언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고민할 필요 없이 노션입니다. 칸반보드로 나의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관리하고, 캘린더 뷰로 콘텐츠 발행 일정을 짜고, 갤러리 뷰로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등 'All-in-One 대시보드'를 구축하는 것은 노션만이 가능한 영역입니다.
나의 최종 선택: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구축하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냐고요? 저는 두 도구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포기하고, 각자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몇 년간의 고민 끝에 내린 최적의 결론입니다.
- 에버노트 = 나의 제2의 뇌 (외부 저장 하드)
모든 정보의 '인박스'이자, 영구 보관용 아카이브입니다. 웹에서 본 좋은 글, 영수증, 계약서 스캔본, 강의 노트,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조각 등 당장 사용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필요할지 모르는 모든 '원재료'를 에버노트에 저장합니다. 강력한 검색 기능이 있기에,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 노션 = 나의 사령부 (작업용 메인보드)
현재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의 지휘 본부입니다. 블로그 콘텐츠 기획, 유튜브 제작 파이프라인, 장기 목표 관리, 독서 데이터베이스 등 '가공'하고 '실행'해야 하는 모든 활동적인 정보들을 노션에서 관리합니다. 에버노트에서 가져온 '원재료'를 노션이라는 작업대 위에서 요리하는 셈입니다.
최종 정리: 당신을 위한 선택 가이드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당신의 성향과 주된 사용 목적에 따라 아래 가이드를 참고해 보세요.
👉 만약 당신이...
자료 수집가, 연구원, 학생, 작가이거나
웹서핑과 독서를 통해 정보를 모으는 것을 즐기고,
'빠른 저장'과 '강력한 검색'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정답은 에버노트입니다.
👉 만약 당신이...
기획자, 프로젝트 관리자, 1인 기업가이거나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 복잡한 목표를 관리해야 하고,
나만의 맞춤형 'All-in-One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면,
정답은 노션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저처럼 정보 수집과 프로젝트 실행 모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두 가지 도구를 모두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워크플로우'를 구축해 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통해 당신의 생각과 삶을 어떻게 정리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